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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이란, 폐허 속에서 피어난 조용한 변화

이갈렙 기자 | 기사입력 2025/11/10 [09:02]

전쟁 이후의 이란, 폐허 속에서 피어난 조용한 변화

이갈렙 기자 | 입력 : 2025/11/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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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제스탄 주 대부분이 후르 알아짐 습지 화재로 인한 짙은 연기와 스모그로 뒤덮이며, 극심한 대기 오염을 겪고 있는 모습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끝난 뒤, 한 젊은 이란인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거주하던 알리레자 탈라쿠브네자드는, 폐허 대신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은 새로운 이란을 마주했다.

그는 “내가 떠나왔던 나라와 지금의 이란은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말했다.

 

탈라쿠브네자드는 트위터(X)에 올린 긴 글에서, 지금의 이란이 얼마나 극심한 불신과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정전과 단수는 일상이 되었고, 공기는 매연과 모래먼지로 질식할 정도다.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솟았으며, 식탁에 오르는 기본 식료품조차 사치품이 되었다.

 

“이란은 항상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은 없었다.”

그는 정부의 무기력과 공포를 지적했다. 물 부족이나 전력난 같은 문제조차, 시위를 두려워해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정부가 억지로라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용기도 없다.”

 

한 전력부 공무원은 분노한 시민들이 사무실로 난입해 “너 때문에 에어컨도 못 쓴다”며 전원을 꺼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과거에는 9일마다 한 번씩 국가적 위기가 왔다면, 이제는 하루에 아홉 번 위기가 온다”는 그의 표현은 지금의 이란을 함축한다.

 

 

테헤란은 아직 서 있다. 거대한 폐허나 파괴된 건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은 전쟁의 기억으로 깊게 갈라졌다.

수많은 이란인들이 여전히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폭발음이나 큰 소리에 몸을 떤다.

 

특히 6월 ‘에빈 교도소 폭격’은 국민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한 소녀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다가 폭격으로 숨졌다는 이야기는 이란 사회의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전쟁 중 며칠 동안 테헤란이 완전히 텅 비었을 때가 있었다. 새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 적막 속에서 사람들은 종말이 온 것처럼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의 ‘정밀한 군사 작전’에 일종의 존경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무차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모든 타격은 목적이 있었다.”

한 친정부 인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란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거리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 은행과 공항에서도 자유롭게 다니고, 그 모습을 단속하는 경찰은 거의 사라졌다.

“이 자유는 정부가 허락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한 것이다.”

 

그는 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LGBTQ 이란인들이 거리에서 숨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옷차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어떤 긴장도 없었다.”

 

종교 권위가 흔들리면서, 많은 이들이 부적이나 주술 같은 비정통적 신앙으로 향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SNS와 팝문화에 몰입하며, 더 이상 서구식 문화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가 부모님 몰래 파티를 열던 세대였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숨길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탈라쿠브네자드는 글의 끝에서 이렇게 썼다.

“이 변화는 망명 지도자나 개혁 세력이, 혹은 트럼프나 네타냐후 같은 외부 지도자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이 변화는 가족 안에서, 사회의 심장 속에서 스스로 자라난 것이다.”

 

그는 이어 “히잡을 쓴 여인과 서양식 옷을 입은 여성이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서 있는 장면이 나를 가장 기쁘게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무너진 나라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란의 조용한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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